Cold Case Profiling
3. 사바이 주점 학살 사건
  I. 도입
  II. 전개
  III. 분석
      1) 프로파일링 맵
      2) 수사 과정
      3) 상세 분석
      4) 프로파일링 결과
  IV. 의혹
  V. 현재




사바이 주점 학살 사건
1998년 6월 14일,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 주점에서 일어난
20대 남성 3인조의 학살극. 숱한 시체를 봐왔을 법의학자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던 사건으로 현장에서 수많은 지문과 족적, 혈흔 등의
증거와 목격자까지 있었어도 끝내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한 비운의 사건이다.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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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링 맵

[ 1998년 6월 14일, 사바이 단란주점 학살 사건 발생지 ]




수사 과정

[ 사건 발생 직후의 사바이 단란주점, 경찰차 옆에 목격자의 택시가 주차되어 있다. ]

안일했던 경찰

경찰은 처음 이 사건의 범인들을 빠른 시간 안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발생 당일은 축구 중계가 있었던 날이고 단란 주점을 찾은 손님들은 피해자 3명과 범인 3명해서 6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범인들은 증거물들을 흩뿌릴 정도로 많이 남겨두었고 지문마저도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 그런 범인들을 목격한 목격자들까지 있었으니 누워서 떡 먹기식으로 범인들을 쉽게 검거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사건이 발생한 주점은 CCTV 조차 없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방범용 CCTV 설치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때가 초여름인만큼 새벽에도 어느 정도 통행이 있을거라 생각, 마침 주점 건너편에 포장마차가 한 두 군데 있어 목격자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마저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필 그 날은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첫 경기 날이었고 시청률이 유난히 높았던 때였다. 이 때문인지 목격자들을 찾는 데 난항을 겪는다.

결국 범인들의 흔적을 찾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는 수많은 흔적과 족적이 발견되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DNA를 확실하게 뽑아내는 게 불가능해 지문을 집중적으로 찾았고 39개나 되는 지문을 찾아낸다. 그러나 이 중 31개는 대조 가치가 없었고 나머지 8개의 지문에 희망을 결어본 결과 모두 주점 관계자들의 지문이었다. 지문이 묻어 있었을 법한 술병과 술잔 등도 모두 범인들이 산산조각 내버려 지문 채취도 불가능했다. 굉장히 치밀한 자들이었다.
또 사건 당일 서울은 비가 많이 내린 데다 범인들이 수돗물까지 틀어놓은 바닥에 도착 당시엔 이미 주점 전체가 물 천지였다. 그 탓에 지문 채취는 더욱 난항을 겪었고 감식 자체도 힘들었다.


상세 분석

MONTAGE


  • 나이 : 20대 중반~30대 초반
  • 신체 : 168~170cm
  • 외모 : 살찐 형의 얼굴형, 짙은 쌍꺼풀, 옅은 들창코, 약간 두툼한 입술, 짧은 스포츠 머리
  • 특이사항 : 서울 말씨
  • 착의 : 흰색 긴팔 블라우스형 와이셔츠(칼라폭 적음), 검정 기지 바지(아래부분 폭이 좁음)
  • 나이 : 20대 중반~30대 초반
  • 신체 : 168~170cm
  • 외모 : 약간 둥근 얼굴에 하관이 빠짐, 볼에 살이 없음, 희고 깨끗한 피부
  • 특이사항 : 전라도 말씨
  • 나이 : 20대 중반~30대 초반
  • 신체 : 168~170cm
  • 외모 : 갸름하고 마른 얼굴, 눈이 작음, 앞머리가 약간 김

[경찰이 수배한 범인의 몽타주]


피해자 목록


[ 피살자 1 : 여주인 정 씨 (41,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거주) ]

이혼녀 정 씨는 고등학생인 외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고 노래방 소유주인 언니와 함께 주야간으로 이 주점을 공동경영하고 있었다.

피해 상태
  • 케이블 타이로 결박된 뒤 바지와 팬티가 칼로 찢겼고 엉덩이가 노출된 채로 성적 학대를 당함.
  • 양쪽 눈 언저리와 머리 전체를 구타당했고 우측 대퇴부에는 8cm 깊이의 자창 흔적.
  • 등어리에 17cm 깊이의 자창 흔적에 의해 폐정맥이 절단되어 사망에 이른 것으로 확인.
  • 오른쪽 입이 귀쪽으로 13cm 길이로 찢어짐

[ 피살자 2 : 생존자 박 씨의 지인 유 씨 (41, 음식점 경영) ]

주점 옆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던 유 씨는 생존자 박 씨와 함께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피해 상태
  • 상체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바지와 팬티가 칼로 찢어져 엉덩이가 노출된 채로 성적 학대를 당함.
  • 얼굴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구타당해 얼굴이 온통 붉게 변색될 정도였음.
  • 좌측 이마에 강한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음.
  • 우측 이마에 8cm 깊이의 좌열창, 머리에도 둔기에 맞아 새겨진 좌열창 6개소.
  • 앞목이 12cm 정도 깊게 잘려 목이 반 정도 잘려 나간 상태. 그로 인한 경동맥과 기관지, 식도 절단으로 과다출혈 사망으로 확인.

[ 피살자 3 : 주점 단골 손님 박 씨 (38, 택시운전수) ]

야간 택시운전수였던 박 씨는 동창생의 소개로 여주 정 씨를 처음 알게 되었다. 사건 당일 손님이 뜸한 날에 홀로 놀러왔다가 봉변을 당했다.

피해 상태
  • 양팔이 뒤로 묶인 채 손목이 철사로 7회에 걸쳐 꽁꽁 묶여 결박당함.
  • 머리를 집중적으로 구타당했고 2~8cm 깊이의 창상이 5개소 남아 있었음.
  • 기타 부위에 8개소에 이르는 자창 흔적.
  • 가슴 부위에 17cm 깊이의 자창, 등어리에 9cm 깊이의 자창이 존재, 그로 인해 폐에 구멍이 뚫려 사망에 이름.

용의자 유추

1. 특수부대원 출신일 것이다.

[ 특수부대원들이 쓰는 호신용 칼집(현장 사진 X) ]

사건 현장에서 특수부대나 스킨스쿠버에서 쓰이는 톱니용 칼이 발견되었었다. 이는 물 속에서 결박된 손을 풀 때 쓰이는 호신용 칼이다.
이러한 경우로 유추해볼 때 용의자 중 누군가가 특수부대원 출신일 수도 있다.


2. 범행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 느슨하게 묶인 케이블 타이(좌)와 단단히 묶인 철사(우) ]

좌측의 케이블 타이는 느슨하게 묶여서 아예 풀려있는 채로 발견되어 있다. 반대로 우측의 철사는 마치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정교하게 묶여있어 손쉽게 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용의자들 사이에 범행의 정도가 차이가 드러나 있다. 용의자중 한 명이 이런 범죄에 능숙한 사람으로 보인다.


3. 인쇄소나 전자공장 직원이였을 것이다.

[ 현장에서 발견된 고무골무 ]

현장에서 손가락 고무골무가 발견되었다. 혈흔도 묻어있지 않아 용의자중 누군가의 단순소지품으로 보인다. 고무골무는 98년도 당시 인쇄소에서 제본 도중 간지를 삽입할 때와 책을 넘길 때 손쉽게 넘기기 위해 사용되던 것이고 또는 전자공장에서 정전기가 통하지않게 작업할 때 쓰이는 용도로 자주 쓰였다.
즉, 용의자중 누군가는 인쇄소나 전자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였을 것이다.




프로파일링 결과


"계획 범죄가 아닌 우발적 범죄다."


첫번째 근거로 6월 13일 pm 10:00 경에 범인들이 주점에 왔는데 이미 이 씨의 언니가 그들을 보았었다. 아예 자신들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빤히 있는데 계획 범행을 목적으로 왔다면 얼굴을 빤히 드러낸 채로 주점에 몇 시간이나 있었을까? 만약에 계획 범행이였어도 이미 정체를 드러내서 계획을 미루거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두번째로 범인들은 양주 3병을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데 도수 40%가 넘는 독한 술을 3명이서 3병을 마셨다면 숙취 상태가 꽤나 진행되었을 것이다. 계획적이라면 완전범죄를 위해 마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들의 시체를 감식한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처음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해볼 만한 시신의 상태가 아니다”라고 견해를 밝혔고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의 정성국 박사 또한 “범행의 형태가 너무 잔인하고 대범해서 일반인이 저지른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즉, 범인들은 과거에 살인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또 우발적 범죄의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최 씨가 ‘남편의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겨우겨우 먹고 살고 있다’고 했을 때 범인들도 ‘회사에 잘려서 같은 처지고 이러고 싶지 않다’고 대꾸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IMF 금융위기 직후였다. 해고가 매우 빈번한 시기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사회적인 불행을 겪은 청년들이 술에 취해 피해자들과 어떠한 연유로 충돌했고 결국 순간적 분노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묻지마 범죄임이 분명해보인다.




의혹

1. 이들은 단순 강도였는가?

우선 현장에 남겨진 흔적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고려해볼 때 언뜻 봐서는 금품을 노린 범죄같이 보인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피해자 박 씨의 상태를 봐야 한다. 당시 박 씨는 금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시곗줄이 풀려 있었으나 시계를 가져가진 않았다. 또 손가락에는 금반지가 있었음에도 범인들은 빼지도 않았다. 그 외에 여인들의 손목에 차고 있던 반지와 금팔찌 등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치 급히 귀금속들을 훔치고 입막음을 위해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달아나 미처 다 못 챙긴 것처럼 보이나 범인들은 업주 정 씨의 입을 찢고 엉덩이 부위를 칼로 찌르는 등 시간만 낭비되는 불필요한 시신 훼손을 했고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잡고 자르는 짓을 했다.
하지만 현금 일부와 카드, 귀금속 일부는 없어졌다. 피해자들의 통장을 수사해 본 결과 뾰족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장물로 내놓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전국 보석상에 장물품표를 뿌리다시피 발부했지만 판매처를 찾을 수 없었다. 이로 보아 단순 금품 강도의 목적은 아니었다.


2. 이권을 노린 조폭들이였는가?

생존자 박 씨의 의견을 들어보면 유독 '갑'이 조폭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90년대 말의 대도시 유흥가는 조폭들이 한창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던 때였고 마침 신사동은 그 무렵 조폭들의 이권 다툼이 활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범인들이 사용한 칼은 일반 식칼치고는 하얗고 반짝거리는 데다 두께가 매우 얇았다고 한다. 이 증언대로면 사시미 칼이 분명해 보이며 범인들이 조폭일 것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의혹도 부정되었다. 당시 사바이 단란 주점은 유명인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고급 음식점인 ‘사바이 음식점’에 딸린 단란 주점이었고 사바이 음식점은 3명이 돈을 합자해 투자해서 운영한 고급 음식점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지분 다툼이 일어나진 않았나 하지만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사바이 음식점은 98년 이후 매출이 급감한 상태였고 이 씨 자매에게 단란 주점만 임대해준 것이지 조폭이 노릴 만한 이권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그 주점은 본래 음식점을 드나드는 손님들이 2차로 놀다 가라고 만든 서비스 룸 형식이었고 이 씨 자매가 임대를 받아 단란 주점을 운영한지는 고작 반년 정도밖에 안되었었다.


3. 살인 의뢰를 받은 자들인가?

단순 강도의 목적도 아니고 이권을 노린 조폭들도 아닌 것 같아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은 단순 강도 살인이 아닌 애초부터 박 씨를 타깃으로 노리고 저지른 청부살인의 가능성이 높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나머지 여자들은 입막음을 위해 죽인 것이고 물건 일부를 훔쳐 가고 카운터 등을 어지럽힌 것도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박 씨의 살인을 교사한 인물로 거론된 사람은 업주 정 씨의 전 남편이었다. 사건 당시 업주 정 씨는 남편과 이혼한 상태였는데 정 씨의 전 남편이 정 씨와 사이가 각별했던 택시 기사 박 씨가 불륜 관계가 아닐까 의심해서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살인을 교사한게 아닌가 하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택시 기사 박 씨의 지인들은 그가 남들로부터 원한을 살만한 짓을 저지르거나 보복당할 만한 일을 저지른 적도 없다며 단언했다. 그리고 정 씨의 전 남편도 당시 경제적으로 심히 쪼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 청부를 할 만한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이 점을 제외하면 뚜렷한 접점이 없어 결국 정 씨의 전 남편을 기소하지 않았다.




현재

* 출처 : KBS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았다.


1998년 외환 위기 직후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해고가 잦았던 혼란 속에서 프랑스 월드컵이 열렸다. 국민들은 여러모로 고달픈 상황을 프랑스 월드컵으로 돌리면서 잠시나마 벗어나려 했다. 그런 와중에 사회에 막연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던 20대 3인조는 월드컵 중계보다는 부의 상징 강남에서 그들만의 잔혹함을 표현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2000년 8월 1일 이후 일어난 미제 사건은 태완이법으로 인해 공소시효가 폐지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보다 전인 1998년에 일어나 태완이법을 빗겨나갔다. 만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들은 이 사건이 공소시효도 끝났고 이미 퇴직까지 했지만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공소시효가 끝났더라도 절대 이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경찰들에게도 있어 매우 잔혹하고 끔찍하기로 악명 높았던 사건이기에 꼭 잡고 싶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 아직도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범죄로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이후
더한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제보
서울강남경찰서
02-557-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