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경위 : 친구를 만나고 귀가하던 중 도일동 하리 입구에서 오후 10시경 버스에서 내린 후 실종됨
상세 분석
경찰의 수사
경찰은 수상한 이 남성을 송 양의 최종 목격자이자 납치범일 수 있다고 판단, 남자의 행적을 뒤쫓았다. 주변 마을을 샅샅이 찾고 일대 성매매 업소까지 수색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후라 최첨단 수사법에 이제 막 열을 올리던 시기였으나 그녀가 살던 동네는 워낙 낙후된 지역이여서 CCTV가 없었고 집으로 가는 길목은 인적도 드물고 가로등이 없어 어둡고 좁은 골목길이였다. 그래서 수많은 인원을 투입해 논밭, 갈대숲, 하수구, 산 등 인근을 샅샅이 수색해보았지만 실마리는 찾을 수 없었다.
때마침 사건 발생일이 설날 사흘 전이였다는 사실에 착안해 설을 보내기 위해 귀성한 전입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망을 넓혀 조사해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남자의 정체
당시 버스기사는 송 양과 합승하던 남자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오리털 파카에 등산화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을 확인하진 못했다.
평택 시내에서 버스를 탔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도일동 하리부락’이라고 대답했다.
몸에서 술냄새를 풍겼다.
버스에서 내린 후 도로를 건너지않고 지하도로 향했다. 하지만 도로든 지하도든 하리마을 방향인건 마찬가지였다.
서정리까지 갔는 데도 안내리고 다시 하리 입구로 와 송 양과 같이 하차.
프로파일링 결과
단일 사건이 아닌 연쇄 사건 중 하나!
[ '송혜희 양 실종 사건'과 '평택 부녀자 살인 사건'의 상황도 ]
평택 부녀자 살인 사건
발생일 : 2002년 9월 26일
발생 장소 :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하리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
피해자 : 전 모씨(42)
발견일 : 2003년 2월 15일
발견 장소 : 버스 정류장 인근 농경지
실종된지 141여 일만에 변사체로 발견됨
사건 발생 3년 후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42세의 전 모씨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전 씨는 당일 밤 9시에 버스에서 내려 송 양이 걷던 길과 같은 길을 홀로 걷다 변을 당했고 실종된지 141일이 지나자 버스정류장 근처 논밭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전 씨의 사체는 청바지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고 상의도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다.
결론
" 이 지역을 잘 알고 있는 단독범의 소행 "
두 사건 모두 정확히 같은 위치에서 발생하였다.
피해 여성 모두 165~170 대의 큰 키였고 청바지를 착용, 혼자 밤에 귀가하려 했다.
귀가길은 인적이 드물고 논으로 이어진 농로와 농지 주변이였다.
혼자 귀가하는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루어 진 점으로 보아 용의자는 이 지역의 지리를 꿰뚫고 있다.
차량을 이용한 이동이나 은폐가 없어 기동력 없는 단독범의 소행이고 인근 위치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의혹
1. 정말 단순 가출인가?
5년이 흐른 뒤인 2004년에 이르자 경찰은 송 양이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가족은 그럴 리 없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경찰은 여기에라도 희망을 건다.
2004년 2월, 부산광역시에서 송 양의 명의로 인터넷이 접속된 것을 포착한 경찰은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 잠복 수사를 한다. 다시 접속 흔적이 나타나자 해당 피시방을 급습해 확인했지만 접속자는 송 양이 아닌 어느 젊은 남녀였다. 알고보니 이들은 송 양의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해 붙여둔 전단지에 있던 송 양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 버스 기사가 범인?
애초에 이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말을 붙였다는 것이 어색하고 하필 30대 남성이 ‘하리부락’이라 대답한 점도 수상하다고 여기는 의견도 있다. 스마트폰도 없던 99년도에 외지인이 술에 취한 채 대중교통을 통해 구체적 지명을 언급하는건 앞뒤가 <맞지않고 평소 늦은 시간에 혼자 귀가하는 실종자를 눈여겨 본 버스기사가 범행을 감추기 위해 30대 남성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의견이다.
3. 장기 밀매 조직의 희생양이 됬다?
아마 장기 밀매 조직에 의해 희생됬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다. 정상적인 장기 이식을 위해선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등록해야하는데 이식 대기자는 넘쳐나는데 정작 이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언제 차례가 돌아올지 기약이 없고 운에 기대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해외에 나가 원정 장기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우려해 국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장기 밀매업자’들과 접촉에 나서는데 그러한 수요를 ‘납치’ 등을 통해 조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 출처 : 미디어오늘
"아빠만 잘 살아서 미안해."
전교 1~2등을 할 정도로 영특했고 성실해서 가족의 자랑거리였던 딸.
실종된 딸을 찾아다닌 거리는 무려 72만㎞로 지구 18바퀴를 돈 거리와 같다. 지금까지 쓴 전단만 해도 대략 300만 장, 현수막 2500개에 달한다. 과거 2차례의 허리 수술과 뇌경색 후유증으로 거동이 온전치 못하지만 딸을 찾는 전단과 현수막 제작 비용을 보태기 위해 하루종일 폐지를 모으고 계신다.
송 양의 어머니는 딸을 찾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우울증을 앓아 농약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지만 아버지는 현재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않으며 실종된 딸을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가시고 있다.
우리 혜희가 실종된지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디며 지난 17년간 혜희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99년 2월 송탄여고 2학년에 다니던 어느날 밤, 10시 10분 경에 도일리 막차에서
30대 초반의 남자와 함께 내렸다는 버스 기사의 말을 듣고 실종 신고를 하고
3년 여 간 경찰과 함께 찾아보았지만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생업도 포기한 채 혜희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끝내 혜희 엄마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심장병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우리 혜희를 꼭 찾아달라며 혜희의 실종전단지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은 영혼이라도
남아 우리 혜희를 찾겠다며 피를 토하듯 절규하면서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혼자 남게된 저도 아내의 뒤를 따르려 했으나 혜희를 꼭 찾아달라는 아내의 절규를
잊을 수 없고 큰 딸 마저 버려두고 갈 수가 없었기에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식잃은 부모의 비통한 심정을 헤아려주시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아 주셔서
우리 혜희가 있는지 눈여겨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혜희를 찾는데 도움을 주신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심장을 팔아서라도 그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